극한의 미니멀리즘! 집까지 버린 일본 젊은이들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

도쿄 문화 일본문화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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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인류라고도 불리며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어드레스호퍼'는 일정한 거처없이, 동가식서가식하는 이들을 말한다.

직업도 돈도 있지만, 고정 거주지 없는 '어드레스 호퍼족'

(도쿄=프레스맨) 김민정기자 = 지난 4월 30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하고, 5월 1일 나루히토 새 일왕이 탄생했다. 연호도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됐다. '개원(改元·연호가 바뀜) 열기'의 덕을 보기 위해 '레이와'를 회사명에 넣은 기업들이 생기는 가 하면 '레이와' 시작에 맞춰 혼인신고를 하려는 커플들이 구청 창구로 몰려가는 진풍경이 연출 되는 등 일본은 한껏 들뜬 분위기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새로운 인류라고도 불리며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어드레스호퍼'는 일정한 거처없이, 동가식서가식하는 이들을 말한다. 주소를 옮겨가며 생활하는 '어드레스 호퍼'는 '노숙자'와 같이 일정한 주거지는 없는 반면, 어엿한 잘 곳이 있고 직장도 있어 생활비를 번다. 

'어드레스 호퍼'들은 주로 게스트하우스, 에어비앤비 등에서 묵으며 때로는 친구의 집을 전전하기도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구 및 가전제품 등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옷도 책도 취미를 위한 어떠한 컬렉션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렁크 하나에 필요한 옷가지만 챙겨 넣고, 밤이 되면 여기저기 잠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이들, 돈을 벌면 집부터 장만하는 것이 일반적인 세상에서 그들은 대체 왜 주택 소유하는 것을 포기한 것일까? '어드레스 호퍼'들을 직접 만나봤다.
집없는 고교 교사 요시카와 씨의 전재산은 이것뿐이다. 20리터짜리 가방 하나면 충분하다. 더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사진=김민정기자)
일본 지방 도시의 고교 영어교사인 요시카와 게이스케(吉川圭佑, 26세)는 6개월전에 '어드레스 호퍼'가 됐다. 일년에 서너번씩 국내외를 배낭여행하는 그는 지난해 5일 밖에 집에 머물지 않았다. 장기간 이스라엘에 다녀온 탓이다.

어차피 집은 잠만 자는 곳인데다, 머무는 횟수도 적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아예 월세집을 처분하고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게스트하우스에 거처를 정했다. 영어교사인 그에게는 오히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것이 자신의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학생을 가르칠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20리터짜리 배낭 하나가 전재산이다. 이 배낭안에는 출근할 때 입을 양복과 함께 평소에 입을 티셔츠와 트레이닝웨어, 그리고 컴퓨터가 들어있다. 일회용 세면용품과 충전지, 그리고 여권도 필수다. 언제 해외에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면, 종교, 가치관, 나이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겁고, 이같은 경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고 말한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몸을 뉘일 곳만 있다. 그는 버는 돈의 절반을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한다. 뭔가를 바라서가 아니다. 꿈을 가진 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더 편리한 물건이 나와 세상을 바꾸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돈을 모으고 먹고 사는 일은 언젠가 결혼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홀가분하게,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흥겹게 지내고 싶다. (사진=김민정기자)
그에게는 '어드레스 호퍼' 생활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학생들의 학습이나 진로, 생활지도력 향상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집도 절도 없이 동가식서가식하는 그의 생활을 못미더워 하며 눈쌀을 찌뿌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여전히 다양한 직업, 가치관, 사상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일상적 교류를 체험할 수 있는 '어드레스 호퍼' 생활을 멈출 생각이 없다.

일본 최대의 IT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프리랜서 마케터로 활약 중인 이치하시 쇼타로(市橋正太郎, 32세)씨는 2년전에 '어드레스 호퍼'가 됐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는 일반 회사원인 그에게 집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스트 하우스 단체실은 월 1500엔-4000엔선이다. 빨래는 빨래방에서 하거나 세탁소에 맡기고 있다. 공과금은 지불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비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보다 떠돌이 생활이 더 유익하고 즐겁다고 그는 믿는다. '어드레스 호퍼'의 선구자격인 그는 일본 전국의 '어드레스 호퍼'들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설립했고, 지난 3월에는 '어드레스 호퍼' 회사를 설립해, CEO에 취임했다. '어드레스 호퍼'를 위한 정보 공유 행사를 열고, '호핑 매거진'이란 잡지도 창간했다. "어드레스 호퍼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딱히 유명인사의 생활 방식도 아닌,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스로 생겨난 흐름"이라고 그는 규정한다. 

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까? 그는 부정한다. 이치하시 씨는 "꼭 자기집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지난 3월을 동남아시아에서 보냈는데,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컨설팅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며 "IT산업 혁명, 일하는 방식의 개혁, 공유경제 발달 등으로 인해, 각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어드레스 호퍼'의 탄생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드레스 호퍼'의 출현은 30년간 지속된 장기불황과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와 맞물려 있다. '단샤리(断捨離)', 되도록 물건을 소비하는 것은 끊고(断), 집 안의 불필요한 물건은 버리며(捨),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離) 삶을 지향하는 정리법이자 생활방식을 일컫는 신조어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단어로 떠올랐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의미와 과제를 남겼다. 특히나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에 대해 깨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 안에 물건이 많으면 부상을 입거나,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인들에게 이제 '단샤리'는 삶의 철학일 뿐만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어드레스 호퍼'는 '단샤리', 즉 '미니멀 라이프'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고도경제성장기도 거품경제도 겪어보지 못한 일본의 젊은이들에겐 미니멀 라이프가 당연지사로 와 닿는다. 오랜 불경기로 인해 소비를 덜 하는 것이 생활의 안정과 직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시카와 씨는 어엿한 고교 영어 교사다. 취미는 여행이다. 방학을 하면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 그런 그에게 집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다. 지난 해 가을 그는 월세집을 처분하고 나와 홀가분하게 게스트하우스에 살고 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하며 영어 교사로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다양성의 중요성을 더 당당하게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사진=김민정기자)
요시카와 씨는 수입의 절반을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기에 꿈이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서다. 더불어 좋은 제품을 실현시키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공유 오피스를 여는 것이 꿈이다. 그때는 자신도 크라우드 펀딩에 응모할 생각이다. 

그들은 언제까지 집 없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집이 없는 삶이 불안하지는 않은 걸까? 이치하시 씨는 "친구가 있어서 불안할 게 없다"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는 '어드레스 호퍼'로 사는 이들이 있고, 더불어 그들에게 일감을 주거나 때로는 재워주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드레스 호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함께 살아보자는 일본 젊은층의 상부상조 정신이다. 한편, 언젠가 결혼을 해 집을 빌리거나 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요시카와 씨는 '어드레스 호퍼'를 하나의 문화로 정의한다.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문화를 배우고 다른 곳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젊은이 말이다. 

해외로 나가는 유학생이 매년 줄어드는 일본 사회에서 회사원이 된 이후에 전세계를 또는, 일본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어드레스 호퍼'가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학창시절에는 해외나 타지방으로 떠나길 꺼려하던 젊은이들이 오히려 성인이 된 후에 타지 생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치하시 씨는 '어드레스 호퍼'는 배낭여행자와는 다르다고 정의한다. 배낭여행자는 어디까지나 여행으로서 그 장소를 찾지만 '어드레스 호퍼'는 생활인으로서 장기간 체류하며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장을 보며 소비를 하고, 그곳 커뮤니티에 접촉해 현지인처럼 살아가는 경험을 쌓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미 일본에선 '어드레스 호퍼'들을 위한 빨래 대행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어드레스 호퍼들의 주거지가 바뀌어도 묵는 곳까지 옷을 배달해주는 서비스), 지난 4월에는 매달 4만엔을 지불하면 전국 어디서든 머무를 수 있는 월 정액 거주 서비스 ADDress도 시작되었다.

가족, 집, 자동차가 꼭 필요할까? 그들의 의문은 이미 행동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혼, 가족, 혈연, 학연이라는 통상적인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소유라는 개념에 의미 부여를 거부하는 그들은 극한까지 물건을 버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관계를 마주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가득 들어찼기 때문에 기댈만 한 여백이 없어지고,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라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정의처럼 어드레스 호퍼가 집착을 버린 무소유의 실천을 통한 새로운 삶의 방식인지, 주거 불안정이나 홈리스의 세련된 표현일지, 갑론을박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프레스맨과의 컨텐츠 제휴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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